단식 타이머만 있으면 될 줄 알았습니다
2026년 4월 · 간헐적 단식 앱을 만드는 개발자의 비하인드

아내가 출산 후에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공복 시간 세는 게 귀찮다기에 타이머 앱을 하나 만들어줬습니다. 시작 버튼, 원형 타이머, 종료 알림. 깔끔하게 세 가지만 넣었고,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2주 만에 깨졌습니다.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긴 하는데”
아내가 2주쯤 지났을 때 그러더라고요.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긴 하는데, 어디 적어두는 게 아니니까 일주일 전이랑 비교할 수가 없다고.
듣고 보니 당연한 건데 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타이머 로직 만드느라 바빴거든요. 실제로 매일 단식하는 사람한테 필요한 건 "지금 몇 시간째"가 아니라 "그래서 나한테 뭐가 달라졌는데?"였습니다. 시계는 잘 가는데 달력이 없는 셈이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체중 기록을 넣었습니다.

체중 기록 자체는 별 거 아닙니다. 숫자 넣고 저장하면 끝이니까요. 근데 매일 쓰는 사람 입장에서 디테일이 의외로 중요했습니다.
어제 52.3kg을 기록했으면 오늘 열 때 52.3이 미리 채워져 있습니다. 변동 없으면 저장만 누르면 되고, 0.1~0.2 바뀌었으면 그것만 고치면 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매일 아침 체중계에서 내려와서 처음부터 숫자를 입력하는 건 사소하지만 귀찮거든요. 이 기본값 하나 때문에 기록이 끊기지 않았다고 봅니다.
저장하면 어제 대비 변화량이 바로 뜹니다. “▼0.2” 이런 식으로요. BMI도 자동 계산돼서 컬러 게이지 바로 내가 어디쯤인지 한눈에 보입니다. 아내는 이 초록색 바가 유지되는 게 뿌듯하다고 하더라고요.
연속 기록 일수도 보여줍니다. "14일 연속"처럼요. 게임의 출석체크 같은 건데, 보상은 없지만 한번 쌓이면 깨기 싫어지는 묘한 효과가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하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내가 어느 날 체중이 0.2kg 올라간 걸 보고 풀이 죽어 있었거든요. 0.2kg이요. 물 한 잔 차이인데. 그래서 고민을 꽤 했습니다. 체중 변화를 보여주는 게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작은 증가에 좌절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결국 0.2kg 정도의 흔들림은 수분이나 식사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동이라는 맥락을 함께 보여주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숫자만 던져놓으면 독이 될 수 있지만, 맥락이 있으면 괜찮더라고요.
잠을 못 자면 공복이 유난히 힘듭니다
체중 기록을 넣고 나니 바로 다음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어젯밤 잠을 못 잤더니 오늘 단식이 유난히 힘들어.”
저도 경험한 적 있습니다. 똑같은 16시간인데 어떤 날은 점심까지 거뜬하고, 어떤 날은 오전 11시에 이미 무너질 것 같거든요. 뭐가 다른 걸까 생각해보면 대부분 전날 수면이 안 좋았던 날이에요. 수면 부족이 그렐린(배고픔 호르몬)을 올리고 렙틴(포만감 호르몬)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고요.
그래서 수면 카드를 넣었습니다. 취침 시간, 기상 시간, 수면 품질. 끝.
처음에는 수면 품질을 5단계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아내한테 테스트시켰더니 "나쁨이랑 매우 나쁨 차이가 뭔데?"라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수면 품질을 5단계로 정밀하게 평가할 사람은 없습니다. 3단계로 줄였습니다. 좋음, 보통, 나쁨. 이모지 하나 탭하면 끝.
취침-기상 시간도 어제 기록이 미리 채워져 있습니다. 생활 패턴이 크게 안 바뀌면 그냥 저장만 누르면 돼요.
그리고 수면 기록을 어느 날짜에 귀속시킬지가 은근히 골치 아팠습니다. 밤 11시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났으면, 이건 어제 꺼인가 오늘 꺼인가? 결론은 기상일 기준. 아침에 일어나서 기록할 때 “오늘” 날짜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럽거든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걸 잘못 정하면 매일 아침마다 “이거 어제 날짜 아니야?” 하고 헷갈립니다.
물 한 잔을 기록하는 데 3초
수분 기록은 사실 처음에 넣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먹는 게 없으니까,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마시던 물도 줄어듭니다. 저는 원래 물을 잘 안 마시는 편인데, 단식 중에는 더 심해져서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커피 한 잔이 전부였습니다. 그날 오후에 두통이 왔어요. 아내한테 "물을 좀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그러면 기록하게 해달라"는 답이 돌아와서 추가했습니다.

수분 기록에서 가장 신경 쓴 건 속도입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앱 열어서 기록하는 데 10초 넘게 걸리면 아무도 안 합니다. 음료 종류 5개 — 물, 커피, 차, 탄산수, 직접입력 — 아이콘 탭 한 번이면 바로 기록됩니다. 용량은 슬라이더로 조절할 수 있고 기본값은 250ml.
원형 프로그레스 링이 채워지는 게 은근히 효과가 있습니다. 목표 2,000ml 중 1,500ml를 마시면 75%가 차 있는 링이 보이는데, 나머지 25%를 채우고 싶어집니다. 기록 앱에서 시각적 피드백은 정보 전달보다 동기부여 역할이 더 크다는 걸 이걸 만들면서 알게 됐습니다.
컨디션은 기분이 아니라 몸 상태입니다
체중, 수면, 수분까지 넣었는데 아내가 또 한마디 했습니다. “오늘 유난히 짜증이 나는데, 단식 때문인지 잠 못 잔 건지 모르겠어.”
컨디션이라는 게 주관적이라서 기록해봤자 의미가 있나 고민했는데, 나중에 패턴을 볼 때 꽤 쓸모가 있더라고요. 단식 시간은 똑같은데 컨디션이 바닥인 날이 있으면, 그 원인을 수면이나 수분에서 찾을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 "기분"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바꿨습니다. 단식 앱에서 감정 일기를 쓸 이유는 없고, "오늘 몸이 어떤가"를 기록하는 게 맥락에 맞으니까요. 5단계 이모지로 만들었습니다. 수면은 5단계가 너무 많았지만, 컨디션은 하루 중에도 여러 번 바뀌는 거라 5단계가 적당했습니다. 실제로 스크린샷을 보면 오전 7:30에 "아주 좋음"이었다가 오후 3:20에 "좋음"으로 바뀐 타임라인이 보입니다.
기록이 쌓이면 패턴이 보입니다
이게 진짜 재미있어지는 건 일주일 정도 지나서부터입니다.

인사이트 탭에 요일별로 단식 시간, 컨디션, 수면, 수분이 나란히 보입니다. “5/7회, 평균 16.4시간” 같은 주간 요약 아래로 요일별 상세가 펼쳐지는데, “수요일에 컨디션이 유독 안 좋았네. 그날 수분이 60%밖에 안 됐고 수면도 5시간이었구나” — 이런 연결고리가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니라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스스로 보입니다.
매일 습관 스트릭도 여기 있습니다. 수분 7일, 체중 14일, 컨디션 10일 — 항목별로 따로 집계돼서 어떤 기록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어디가 빠지기 쉬운지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간헐적 단식 기록의 진짜 가치는 여기 있었습니다. 타이머가 알려주는 건 "오늘 16시간 했다"인데, 다이어리가 알려주는 건 "왜 어떤 날은 쉽고 어떤 날은 힘든지"거든요.
사실 인사이트를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건 자동 분석을 넣을까였습니다. “수면이 6시간 미만인 날 컨디션이 평균 1.5점 낮습니다” 같은 자동 코멘트요. 결론적으로 아직 안 넣었습니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분석은 오히려 오해를 줄 수 있어서, 일단 데이터를 나란히 보여주고 패턴은 본인이 발견하는 방식으로 갔습니다. 이 부분은 솔직히 좀 아쉽습니다.
아쉬운 것들
다 좋은 이야기만 하면 이상하잖아요.
2주 이상의 장기 트렌드가 아직 약합니다. 주간 단위로는 잘 보이는데, 한 달간 체중과 수면의 상관관계 같은 건 아직 못 보여줍니다. 자기관리 루틴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최소 한 달은 봐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아직 못 갔어요.
그리고 안드로이드 전용입니다. 아내는 안드로이드를 쓰니까 문제없었는데, iOS 쓰시는 분들한테는 죄송합니다. 솔직히 혼자 만들다 보니 양쪽 동시에는 어렵고, 안드로이드부터 제대로 만든 다음에 넘어갈 생각입니다.
매일 쓰고 매일 고치고 있습니다
각각 따로 보면 대단한 기능이 아닙니다. 체중 기록 앱, 수분 추적 앱, 수면 기록 앱은 이미 따로 있으니까요.
다만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한테는 이것들이 따로 놀면 의미가 반감됩니다. “오늘 단식 16시간 했고, 체중은 0.2 빠졌고, 물은 75% 마셨고, 잠은 8시간 잤다” — 이게 같은 날 같은 화면에 있어야 내일 뭘 조절할지가 보이거든요.
아내와 매일 쓰고 있습니다. 불편한 게 생기면 그날 밤에 고칩니다. 이 앱 뒤에는 매일 직접 쓰면서 고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유일한 차별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서 하루를 한 곳에 기록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한번 써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